자료실

호텔·관광뉴스

[신용석레인저가떴다]억새들의 축제 지나 바위들의 제국…천하제일 동양화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호텔관광경영학부
댓글 0건 조회 358회 작성일 22-03-11 09:25

본문

<9> 남도 명산 월출산…1억6000만년 세월이 빚은 '금강산의 형제'
천황봉 발 아래 솜털구름, 영산강, 멀리 다도해…"정말 미친 경관"
사자 저수지에 투영된 월출산. 외국 국립공원에 온 듯한 아름답고 이색적인 풍경이다 © 뉴스1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 산을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월출산은 '버킷리스트' 산이다. 먼 곳에 있지만, 산은 작아도, 언젠가는 한 번 꼭 가야지! 하고 벼르는 산이다. 그러다가 월출산에 접근하면서 평지에 '갑자기! 우뚝!' 나타난 산체(山體)에 놀라고, 산을 오르며 '매서운' 등산 난이도에 놀라며, 산에 올라서서 "와~~" 하고 이런 절경의 산을 왜 이제 왔나! 하며 놀란다. 산의 규모가 아니라 산의 아름다움, 특히 바위산 풍경으로 따지면 서열의 맨 앞줄에 있어야 할 월출산이다.

월출산의 바위들은 어디에서 왔고, 누가 조각했는가? 금강산과 설악산, 북한산, 월출산은 약 1억6000만 년 전에 함께 태어난 '화강암 형제'들이다. 땅속에서 부글거리던 용암이 지표로 솟구쳐 오르다가 땅 밑에서 식어 굳은 것이 화강암이다.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지표가 무너지면서 바위가 노출되고, 이 바위가 수천 년 세월을 겪으며 깎이고 패여서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아름다운 바위 경관들이다. 가장 한국적인 자연은 이런 하얀 바위와 짙푸른 나무와 맑은 계곡이 어우러진 '동양화 경관'이고, 그런 풍경이 가장 압축된 산이 바로 월출산이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 도갑사-억새밭-구정봉 4.3㎞ "은빛 물결 억새밭, 바위 전망대 구정봉"

월출산의 고장 영암(靈巖)의 이름 뜻도 '신령스런 바위'다. 월출산 종주는 영암읍이나 천황사에서 출발하여 정상인 천황봉을 찍고, 구정봉을 경유해 도갑사 방향으로 내려가거나, 그 반대로 진행하는 방법이 있다. 이번 산행은 도갑사에서 시작한다. 도갑사는 영암이 낳은 대표인물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도선은 우리나라에 풍수지리설을 설파하고 고려의 개국에 기여한 인물이다. 인근에 또 하나의 인물인 왕인박사의 유적지가 있다. 왕인은 일본에 학문을 전하고 가르친 일본인들의 스승이다.

도갑사 전경. 도선국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에 해탈문(국보), 5층석탑(보물) 등의 많은 문화재가 있다. 사진 김병창 © 뉴스1
도갑사 입구에 500년 된 팽나무가, 큰 가지들이 사방으로 주저앉아 지팡이에 의지한 채 눕다시피 서 있다. 나이테는 이미 다 문드러지고, 밑동의 굴곡과 주름에 나무의 세월과 이 고장의 오랜 역사가 배어 있다. 도갑사에 들어가 마당 가운데 느티나무 거목과 직사각형 형태의 큰 돌그릇(石槽)이 잘 있는지 확인한다. 전각들이 커지고 더 생겨서 절이 반듯해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예전의 단출했던 풍경이 그립다.

절의 후원을 통과해서 산으로 접어들며 길 주변에 설치된 자연 해설판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자연을 조금 이해하면 자연이 달라 보인다. 등산로 초입에 작은 습지가 있는데, 거기에 동물을 잡아먹는 식물이 살고 있다. 바로 끈끈이주걱이다. 주걱처럼 생긴 잎에 난 빨간색 털이 꽃처럼 보여 곤충을 유인하고, 털에서 분비한 끈끈한 점액이 곤충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털을 오므려 곤충을 소화해 양분으로 삼는다. 새끼손톱 크기의 세계에서 자연의 치열한 생존전략을 본다.

끈끈이주걱. 등산로 초입의 습지에 사는 희귀식물. 털 끝에 이슬방울같은 점액질을 분비해 곤충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 뉴스1
계곡을 넘나들며 슬슬 올라가던 오솔길의 끝에서 경사도가 높아지며 호흡이 가빠진다. 억새밭이 600m 남았다는 이정표에서부터 된비알이다. 가파른 돌길을 치고 오르니, 나무데크가 보이고, 드디어 파란 하늘이 열려 억새밭에 도착한다. 가녀린 줄기를 바람에 맡기고 흔들리는 은빛 억새 물결은 누구에게나 깊은 추억이 된다. 한때는 억새밭을 넓히기 위해 주변을 불태우는 '축제'를 했었다. 그러나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어야 하는 법, 사람 간섭은 멈췄다. 억새와 갈대를 어떻게 구별하느냐? 의 질문이 많다. 억새는 빗으로 잘 빗은 머리카락처럼 단정하고, 갈대는 마구 뭉치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보인다고 답한다.

억새밭 데크 전망대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구정봉까지는 1.6㎞, 약간의 오르막 능선을 타며 좌우에서 점점 더 많이 나타나는 바위의 세계로 들어선다. 낙석을 주의하라는 표지판에 이어 자동센서로 작동하는 주의방송까지 나온다. 낙석이 우려되는 돌무더기들은 철제 로프로 결박까지 한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안전관리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드디어 '월출산 전망대' 구정봉(738m)에 도착한다. 비좁은 바위틈 통로에 올라서서 봉우리 정상에 서면, 여기서 보는 세상은 정말 다른 세상이다. 지나온 능선도, 가야 할 천왕봉도, 내려서야 할 바람재도 온통 바위투성이다. 마치 바위 거인들이 한꺼번에 나와 힘껏 육체미를 과시하는 듯하다.

아홉 개의 우물이 있다고 해서 구정봉(九井峯)이다. 본래 매끈했던 바위의 미세한 홈에 습기가 어려 돌 성분을 녹이고, 물이 얼어 팽창하면서 둥그런 돌웅덩이가 생긴 것이다. 여름이면 이곳에 물이 고여 무당개구리 몇 마리가 수영을 즐긴다. 사람도 오르기 힘든 이 높은 돌봉우리에 개구리가 어떻게 오르는지 궁금하다.

구정봉 밑 바위의 슈퍼모델들. 파란 하늘과 푸른 영암평야를 배경으로, 구정봉에서 내리 뻗은 산자락에 각양각색의 바위조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 뉴스1
◇ 구정봉-마애여래좌상-바람재-천황봉 2.6㎞ "화려한 수석 전시장, 천황봉은 바위제국 사령부"

구정봉에서 내려와 서쪽으로 500m 아래 지점에 있는 국보 마애여래좌상(돌에 새긴, 부처의 앉아있는 모습)을 둘러본다. 예전의 절은 폐허가 되고 초목이 무성한, 이 높고 깊은 산중에 탑 하나와 부처 한 분이 멀리 마주 보고 있는 광경은,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공곡유란(空谷幽蘭)이란 말이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윽하게 피어있는 난초'라는 뜻인데, 이 돌탑과 돌부처가 그와 같다. 난초의 향기를 마음으로 맡으며 다시 500m 급경사길을 올라 구정봉 아래에 도착한다. 땀이 솟구쳤지만 바람재로 내려가니 땀이 날아간다.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왼쪽 사진의 탑이 하얀 바위를 바라보고 있다. 그 바위에 오른쪽 사진의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높이가 8.6m에 이른다 © 뉴스1
바람재에 내려와 구정봉을 올려다보면 거대하고 길쭉한 바위면에 사람 윤곽이 완연하다. 그래서 큰바위얼굴이라 부른다. 이제 '우람한' 천황봉을 향하여 오르막길이다. 수석전시장 사이 사이로 남근바위와 돼지바위를 비롯해 갖가지 형상의 바위를 감상하면서 쉽게 쉽게 오르다가 정상을 300m쯤 앞두고 돌길은 매우 가팔라진다. 숨이 턱 밑까지 차 한두 번 쉬면서 지나온 길을 뒤 돌아본다. 다른 산에 온 듯 전혀 다른 경관이다.

드디어 올라선 천황봉(809m), 그간 지나쳤던 바위경관이 발밑에 깔리고, 올라왔던 반대쪽에 새로운 바위제국이 짠!하고 나타난다. 그 아래에 펼쳐진 영암벌판과 유장하게 흐르는 영산강, 멀리 다도해 바다까지 산의 수직과 땅의 수평과 바다의 수면이 모여 하나의 풍경이 된다. 월출산 천황봉에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집합 경관'이다. 무심코 올라왔던 어느 날, 솜털 구름이 쫙 깔려 몇 개의 바위 봉우리만 무인도처럼 떠 있던 환상의 추억도 소환된다. 어떤 청년이 핸드폰에 대고 말한다. "정말 미친 경관이야!"

월출산 바위제국의 파노라마. 앞줄 암릉의 왼쪽 장군봉, 가운데 6형제봉, 오른쪽 광암터. 뒷줄 능선의 왼쪽 사자봉, 가운데 천황봉 © 뉴스1
◇ 천황봉-구름다리-천황사주차장 3.4k㎞ "아찔한 사자봉, 스릴 넘치는 구름다리"

천황봉에서 내리막길은 세 갈래다. 100m 아래의 통천문을 지나 왼쪽으로 산성대(山城臺)와 바람 폭포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 사자봉을 내려서서 구름다리로 가는 길이 있다. 어느 길이든 바위제국의 진수를 감상하는 멋진 길이다. 사자봉에서 구름다리로 내려가는 길이 좀 더 스릴이 있다. 너무 위험해서 겨울에 이 길은 폐쇄된다.

사자봉까지 거친 돌길과 계단이 오르락내리락 이어진다. 웬만하면 이 와일드한 급경사길을 오르막으로 삼지 않는 게 좋다. 사자봉에서 구름다리로 내려서는 여러 개 철계단은 '허공에 걸린 사다리'라고 표현하는 게 더 사실적이다. 허공에 발을 딛는 건 아닌지 가슴이 쫄깃쫄깃하다.

드디어 내려선 구름다리. 여기서 천황봉과 장군봉을 바라보면 시야의 90%가 바위절벽이다. 햇빛에 따라 하얗게, 붉게, 황금색으로 물드는 바위제국의 사령부다. 웅장하고 예술적이다. 넋 놓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바위가 된다. 본래 많이 흔들려서 건너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던 구름다리는, 이제 약간만 흔들릴 정도로 보수한 상태로, 그만큼 스릴이 줄었다. 다리 가운데서 깊이 내려다보는 숲의 머리는 생소하다. 나무 하나하나가 동그란 우산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구름다리에서 내려와 바람폭포 삼거리까지 급경사 계단을 길게 내려간다. 계곡에 내려서서 바람폭포를 보려면 200m를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여름철을 제외하곤 물이 떨어지는 폭포라기보다는 바람이 떨어지는 폭포다. 1.6㎞ 평탄한 계곡길을 내려와, 야영장과 탐방안내소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한다. 여기서 다시 천황봉을 올려다보면, 병풍처럼 펼쳐진 수직의 바위 몸체가 압도적이다. 어느 산에서도 보지 못한 ‘바위제국의 위용’ 앞에서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천황사입구에서 바라본 천황봉(가운데), 사자봉(왼쪽), 장군봉(오른쪽).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제국의 위용이 압도적이다 © 뉴스1
'머나먼' 월출산에 와서 산 만 보고 가는 것은 너무 아깝다. 영암에는 월출산의 기(氣)를 소재로 한 다양한 걷기 코스와 건강프로그램이 있다. 월출산의 이름 뜻인 '달뜨는 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구림마을에서 한옥 민박을 하며 다양한 문화시설을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조선의 명필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가 '글씨 쓰기와 떡 썰기 시합'을 했다는 장소기도 하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남도답사 1호 대상은 '강진 월출산'의 무위사다. 무위사의 단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음미하고, 뒷동산에 있는 예쁜 자연관찰로를 산책한 후, 월출산의 뾰족뾰족한 바위들이 내려다보는 녹차밭과 농촌의 평화로운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힐링이 된다. 음식의 고장 전라도에서도 바다와 산과 강이 맞닿은 영암과 강진에 먹거리가 다양하다.

아름다운 자연과 향토적인 문화와 맛깔스러운 먹거리가 삼합(三合)처럼 풍성한 남도의 명산! 월출산이다.



출처 네이버뉴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