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도 끝 섬 ''진도''에서 만난 초가을 풍경
- 조선 제일의 화가 허련의 ''운림산방''- 연못 위 배롱나무 섬, 여백의 美 돋보여- 남종화 50여개 작품 전시중인 ''소치기념관''- 붉고 처연한 색감 멋스런 ''세방낙조'' | 우수영관광지에서 바라본 진도대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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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전남 진도. 제주도·거제도에 이은 한국의 3대 섬이다. 본섬인 진도를 포함해 상조도·하조도·가사도 등 45개의 유인도와 185개의 무인도 등 23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984년 진도대교 완공으로 육지와 연결되면서 가까워졌다. 그만큼 볼거리도 참 많다. 최고의 낙조 명소인 세방낙조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신비의 바닷길, 그리고 고려 삼별초의 항몽 근거지인 남도석성과 용장산성, 건장한 사내의 팔뚝처럼 힘찬 암릉이 꿈틀거리는 동석산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여기에 문화와 예술의 고장으로도 이름 높다. 우리나라 대표 민요인 진도아리랑도 이곳에서 탄생했고, 조선 후기 남종 문인화의 대표적인 화가 소치 허련, 미산 허형, 의재 허백련, 남농 허건 등 화가와 서예가도 진도 출신이다. 가을 초입 남도 땅의 끝에서 섬으로 건너가 그 자취를 따라나섰다.
| 배롱나무 꽃이 활짝핀 운림산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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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행객이 운림산방 화실 앞 마루에 ?아 운림지에 핀 백일홍을 감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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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대가의 화실 ‘운림산방’
진도대교를 지나온 18번 국도. 이 길을 따라가면 섬 중앙을 관통해 남쪽 임회면 팽목항을 거쳐 고군면으로 이어져 동남부를 돌아간다. 서부로는 801·803번 지방도로가 면마다 연결돼 있다. 진도에 들면 빼놓을 수 없는 가장 대표적인 명소가 ‘운림산방’이다.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허유)이 말년을 보낸 곳이다. 진도의 진산인 첨찰산 아래 자리 잡은 운림산방은 그 모습만으로도 수묵과 담채로 그려낸 듯 정갈하고 은은하다.
먼저 소치 허련에 대해 알아보자.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난 허련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20대 후반에는 해남 대둔사의 초의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30대 초반에는 그의 소개로 한양(서울)에 가서 추사 김정희의 제자가 됐다. 당시 추사는 “압록강 동쪽에는 소치를 따를 만한 화가가 없다”며 허련을 아꼈을 정도다. 허련 또한 스승의 기대에 부응해 왕실의 그림을 그리고, 관직을 받는 등 조선 제일 화가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당쟁에 휘말린 추사가 유배를 거듭하다 세상을 뜨자, 허련은 고향으로 돌아와 첨찰산 쌍계사 옆에 소박한 집을 짓는다. 이 집이 ‘운림산방’이다. 이때가 1857년, 소치가 49세 때 일이다. 그는 이곳에서 죽기 전까지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예술가의 타고난 감성 때문일까. 소치는 운림산방을 한 폭의 그림처럼 꾸몄다. 작은 집 앞에 널찍한 연못(운림지)을 파고 한가운데 둥근 섬을 만들어 배롱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나무도 소치가 직접 심었다. 연못 물 위로 드러난 바위 두어 개는 여백의 미를 살렸다. 특이한 것은 운림지는 오각형 연못이다. 이는 네모 안에 나무가 있는 것은 한자로 ‘곤란할 곤(困)’자를 만들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여름 끝 무렵, 연못 가득한 수련과 함께 붉은 배롱나무꽃이 만발했다. 진도 사람 몇몇은 이 같은 안온한 풍경을 두고 ‘몽유진도’(夢遊珍島)라 부른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빗댄 표현이다. 영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도 이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 앵글로 담아냈다.
| 소치의 전형적인 화풍을 엿볼 수 있는 ‘선면산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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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 담긴 여백의 美
| 소치기념관에 전시하고 있는 ‘운무산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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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소치 허련(1808~1893)에 이어 5대에 걸쳐 직계 화맥(畵脈)이 이어지고 있는 남종화의 산실이다. 1993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소치의 예술혼 또한 그가 심은 배롱나무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그 예술혼은 아들 미산 허형과 손자 남농 허건을 거쳐, 증손자, 고손자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진도는 우리나라 남종화의 중심지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남종화는 중국에서 시작한 수묵담채화다. 화려한 채색화인 북종화를 주로 전문 화가들이 그렸다면, 수묵에 은은한 색깔을 더한 남종화는 문인의 필수 교양이었다. 조선의 선비 또한 중국 남종화의 전통을 받아들여 시(詩)·서(書)·화(畵)의 맥을 이었다. 빈틈없이 색칠하는 북종화와 달리 남종화는 여백을 중시한다. 여백은 빈 부분이 아니다. 어느 때는 구름이다가, 또 다른 곳에서는 물살이 됐다가, 다시 안개로 변해 산허리를 감고 올라간다. 운림지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첨찰산을 타고 올라 구름이 되듯이, 구름 속 여백은 텅 빈 채로 변화무쌍하다.
운림산방 옆 소치기념관에는 50여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소치 혀련의 작품은 물론 미산 허형과 남농 허건, 임전 허문 등의 수묵화 작품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걸려 있는 그림은 소치의 스승인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인 ‘세한도’(歲寒圖)다. 19세기 남종화의 절정을 이룬 추사의 대표작이다. 귀양 중인 자신에게 중국에서 구한 귀한 책을 가져다준 제자, 역관 이상적에게 자신의 처지와 고마운 마음을 담았다. ‘추워지고 나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也)는 논어의 구절을 인용해 어려운 시절에 변치 않는 제자에게 감사해 하며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長毋相忘)는 인장까지 더했다. 사제 간의 자별한 마음이 더욱 애절하다.
여기에 기념관에는 소치의 전형적인 화풍을 엿볼 수 있는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와 먹의 농담과 여백미로 가을 강물결의 잔잔함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미산 허형의 ‘추강조어’(秋江釣魚), 채 봄이 오기 전에 꽃을 피운 고절한 ‘매화도’도 꼭 감상해야 할 작품이다.
| 기상청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로 꼽은 진도 세방낙조.(사진=한국관광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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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보다 더 그림같은 ‘세방낙조’
진도에서 가장 그 림같은 풍경을 꼽으라면 세방낙조다. 특히 이 시기에 만나는 진도의 낙조는 꼭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세방낙조는 다른 곳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유독 붉고 처연한 색감을 빚어낸다. 기상청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라고 선정할 정도다. 여기에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양덕도·주지도·소장도·혈도 등 다도해의 경관 또한 압권이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세방낙조를 ‘세방낙조전망대’라 이름 붙여진 전망대에서 맞는다. 하지만 굳이 전망대를 찾아갈 것 없이 세방해안일주도로인 801번 지방도로를 따라 지산면 가치리와 가학리 해안도로 어디에서나 감상할 수 있다. 세방낙조는 대기가 맑아지는 9월부터 12월 말까지가 최고의 절정이다. 그러니 지금 진도를 찾아간다면 한 해 중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다.
낙조라면 이글거리는 해가 선명하게 수평선으로 잠기는 모습이 으뜸이다. 하지만 세방리의 낙조는 해가 구름 뒤로 숨어 버린다 해도 그 맛이 조금도 덜하지 않다. 오히려 해가 넘어가는 순간보다는 해가 다 떨어지고 난 뒤에 서쪽 하늘과 구름을 갖가지 색으로 물들일 때가 더 황홀하다. 그러니 해가 넘어간 뒤에 관광객들이 서둘러 자리를 뜨더라도, 자리에 남아서 지고 남은 빛이 어떻게 사그라지는지, 해가 진 뒤에 푸른 어둠이 어떻게 찾아오는지를 오래도록 바라볼 일이다.
| 토요민속여행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전국 15개 ‘상설문화관광 프로그램’ 중 하나다. 사진은 진도 씻김굿의 하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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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여행팁= 진도에는 아리랑을 포함해 국악을 보고 배우며 즐길 수 있는 곳이 여럿 있다. 진도의 4개 상설 공연 가운데 ‘토요민속여행’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전국 15개 ‘상설문화관광 프로그램’ 중 하나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23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진도 아리랑과 강강술래, 씻김굿 등 무형문화재 공연이 한 시간 남짓 펼쳐진다. 공연 뒤에는 관객과 출연진이 어우러지는 흥겨운 춤판이 벌어진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군립민속예술단 주관으로 열린다. 공연은 무료다. ‘금요국악공감’은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국립남도국악원에서 열린다. 역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수요일엔 진도군 보유 무형문화재 중심의 ‘진수(水)성찬’(1만원)이 오후 7시 30분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일요일엔 ‘일요상설공연’이 오후 2시 해창민속전수관에서 각각 관객을 만난다. 이 밖에 ‘진도아리랑 오거리’ 등 거리공연을 수시로 진행한다. 진도의 민속 음악을 보다 체계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이 운림예술촌과 소포검정쌀마을. 이 마을은 체험 시설과 숙박 시설을 갖추고 있어 하루 이틀 머무르며 진도의 민속음악에 푹 빠질 수 있다.
| 쌍계사 시왕전 안의 명부시왕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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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록 (
rock@
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