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논밭 사이에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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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한탄강 지질공원 포천 멍우리협곡
[변영숙 기자]
한탄강 일대가 드디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최종 인증을 받았다. 지난 7월 7일 개최된 유네스코 제209차 집행이사회에서 한탄강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최종 승인했다는 소식이다.
한탄강은 이미 2015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받은 바 있다. 유네스코의 인증이 없더라도 한탄강 일대는 그 자체가 자연이 빚은 천혜의 지질 자원이다. 이제 세계의 권위있는 기관의 인증까지 받았으니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한탄강 유역은 우리나라 최초로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질공원으로 북한의 평강군 오리산 화산폭발로 분출된 용암이 100km 이상 한탄강을 따라 남쪽으로 흘러 형성된 용암대지가 식으면서 4~8각 기둥모양으로 굳어졌다. 그 위를 비와 강물이 흐르면서 침식과 박리가 일어나 현무암 수직 주상절리와 협곡이 형성된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현무암협곡이다.
이번에 유네스코에서 승인한 면적은 경기 포천시 유역 493.24㎦, 강원 철원군 398.72㎦, 경기 연천군 273.65㎦ 등 모두 1165.61㎦로 무려 여의도 면적의 400배에 달한다. 이와 함께 한탄강 유역의 26개 지역이 지질문화 명소로 등재되었다.
포천 지역에만 11개 명소가 분포되어 있는데 화적연(명승 93호), 비둘기낭 폭포(천연기념물 제 537호), 대교천 현무암 협곡(천연기념물 제 436호), 멍우리협곡(명승 94호), 아우라지 베개용암(천연기념물 제 542호) 등이 대표적이다.
멍우리협곡 가는 길
포천 백운계곡에서 멍우리협곡을 가기 위해 구비구비 산을 넘는다. 해발 1000m를 넘나드는 산세는 깊고 험악하기가 이를 데 없다. 고개 정상인 '여우고개'에 포천군 영북면이 시작됨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신나게 내리막길을 달려 이동면에서 영북면으로 넘어 간다. 도로 안내판에는 철원, 김화 등 낯선 지명들이 자주 눈에 띈다. 철원군과 김화군은 6.25 때 '철의 삼각지대'라고 불렸던 지역으로 일부지역은 전후 수복된 지역들이다.
인가는 점점 드물어지고, 도로에 차들도 가뭄에 콩나듯 지나갈 뿐이다. 사방에 산들이 첩첩이 솟아 있다. 같은 산하지만 접경 지역의 산하에서는 알 수 없는 생경함이 느껴진다. 의식하지 않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분단의 DNA'가 뿌리깊게 심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이제 네비는 좁은 농로를 가리킨다. '이 길이 맞겠지. 그런데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인 멍우리 협곡이 이런 논밭 사이에 있다고? 강은 어디에도 없는데?' 다른 길도 없었고 네비도 길이 틀렸다는 신호는 보내오지 않는다. 설사 길을 잘못 들어섰다 하더라도 눈 앞에 펼쳐지는 풍광 앞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뒤쪽으로는 산이 보호막처럼 둘러 서 있고 앞쪽으로는 초록색 들판이 막힘없이 펼쳐져 있다. 이 풍경만으로도 험준한 고갯길을 넘어 온 데 대한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 계속 차 한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농로를 따라 들판을 가로 지른다. 마치 외통수 길을 달려가는 느낌이다. '차 돌릴 데는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 즈음 너른 주차장이 나온다.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 멍우리 협곡
멍우리는 '멍+을리'가 합쳐진 지명으로, 멍은 '온몸이 황금빛 털로 덮힌 수달'을 뜻하며, 을리는 한자의 乙(을)자처럼 흐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인데 좀처럼 수긍이 되지 않는다. 협곡이 하도 험해 넘어지면 멍이 남는다고 해서 '멍우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주차장 바로 앞에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다리가 보인다. 부소천교다. 부소천은 산정호수에서 발원해 문암리를 지나 흐르다 이곳에서 한탄강과 합류한다.
부소천교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세상에!' 라는 탄성밖에 나오지 않는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험준한 협곡이 내 눈 앞에 펼쳐지다니. 협곡의 높이가 30~40m는 될 것 같다. 현무암 바위를 초록색 식물이 통째로 집어 삼킨 듯 절벽이 온통 푸르다.
혹시 멍우리가 이토록 푸른 절벽을 두고 비유적으로 말한 것은 아닌지. 살짝 몸을 돌려 반대편을 바라보니 부소천이 한탄강 본류와 만나 멀리 멀리 흘러가는 것이 보인다. 작은 하천들이 흘러들어 큰 물줄기를 이루어 흐르는 모습은 장엄 그 자체다.
아찔하다. 조금만 더 있다가는 현기증이 날 것 같다. 다리를 건너 반대편 협곡으로 넘어간다. '인근에 사격장이 있다'는 안내문과 함께 경작지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울창한 나무 숲에 가려 강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강물 흐르는 소리만 들려온다. 두려움이 엄습한다. 인간사에 얽힌 두려움이 아닌 자연 앞에 선 왜소한 인간의 두려움이다. 10만~50만년이라는 상상도 되지 않는 시간 앞에 선 자의 두려움이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발걸음을 뗀다. 숲 속에는 사용하지 않는 방공호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무엇을 지키고자 푸르른 젊음은 땅구덩이 속에 한껏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어야만 했을까. 한 뙈기의 땅이라도 농경지로 일구고 있는 손길은 또 얼마나 부지런한가. 이 모든 풍경이 강줄기를 따라 무심히 펼쳐지고 있다.
숲 속의 적막감이 무서워 막 돌아 나가려는 데 산책을 다녀오는 마을 주민들과 맞딱뜨렸다. 이 반가움이란!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오셨어요?" 걱정 담긴 물음에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진다. "다리 있는 곳 까지만 가보세요. 아주 멋져요."
훨씬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산책길을 따라 걸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주민들이 말한 다리 '벼룻교'가 나온다. 벼룻교에 올라서니 양 옆에 주상절리를 거느린 협곡이 길게 이어진 모습이 훨씬 더 잘 조망된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강 건너 강변에 사람들이 보인다. '어떻게 저기까지 내려갔을까?' 나 역시 강변으로 내려가 주상절리를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막 떠나 오려는데 하루종일 하늘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이 걷히면서 눈부신 태양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탄강 협곡과 들판에 빛이 쏟아져 내린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변화무쌍함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멍우리협곡 즐기기
멍우리 협곡 지질공원에는 1코스 구라이길, 2코스 가마소길, 3코스 벼룻길, 4코스 멍우리길 등 4개의 트레킹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전 구간 5~6km거리로 1시간 ~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인근에 있는 '멍우리 협곡 캠핑장', 화적연 캠핑장 등은 캠핑 애호가들 사이에서 '오지' 캠핑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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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숙 기자]
▲ 포천 멍우리 협곡 유네스코 서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포천 멍우리협곡은 길이가 4km, 주상절리의 높이가 30~40m에 이른다. |
ⓒ 변영숙 |
한탄강 일대가 드디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최종 인증을 받았다. 지난 7월 7일 개최된 유네스코 제209차 집행이사회에서 한탄강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최종 승인했다는 소식이다.
한탄강은 이미 2015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받은 바 있다. 유네스코의 인증이 없더라도 한탄강 일대는 그 자체가 자연이 빚은 천혜의 지질 자원이다. 이제 세계의 권위있는 기관의 인증까지 받았으니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한탄강 유역은 우리나라 최초로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질공원으로 북한의 평강군 오리산 화산폭발로 분출된 용암이 100km 이상 한탄강을 따라 남쪽으로 흘러 형성된 용암대지가 식으면서 4~8각 기둥모양으로 굳어졌다. 그 위를 비와 강물이 흐르면서 침식과 박리가 일어나 현무암 수직 주상절리와 협곡이 형성된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현무암협곡이다.
▲ 멍우리협곡 - |
ⓒ 변영숙 |
이번에 유네스코에서 승인한 면적은 경기 포천시 유역 493.24㎦, 강원 철원군 398.72㎦, 경기 연천군 273.65㎦ 등 모두 1165.61㎦로 무려 여의도 면적의 400배에 달한다. 이와 함께 한탄강 유역의 26개 지역이 지질문화 명소로 등재되었다.
포천 지역에만 11개 명소가 분포되어 있는데 화적연(명승 93호), 비둘기낭 폭포(천연기념물 제 537호), 대교천 현무암 협곡(천연기념물 제 436호), 멍우리협곡(명승 94호), 아우라지 베개용암(천연기념물 제 542호) 등이 대표적이다.
멍우리협곡 가는 길
포천 백운계곡에서 멍우리협곡을 가기 위해 구비구비 산을 넘는다. 해발 1000m를 넘나드는 산세는 깊고 험악하기가 이를 데 없다. 고개 정상인 '여우고개'에 포천군 영북면이 시작됨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신나게 내리막길을 달려 이동면에서 영북면으로 넘어 간다. 도로 안내판에는 철원, 김화 등 낯선 지명들이 자주 눈에 띈다. 철원군과 김화군은 6.25 때 '철의 삼각지대'라고 불렸던 지역으로 일부지역은 전후 수복된 지역들이다.
인가는 점점 드물어지고, 도로에 차들도 가뭄에 콩나듯 지나갈 뿐이다. 사방에 산들이 첩첩이 솟아 있다. 같은 산하지만 접경 지역의 산하에서는 알 수 없는 생경함이 느껴진다. 의식하지 않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분단의 DNA'가 뿌리깊게 심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 멍우리협곡 초입에 펼쳐지는 드넓은 들판 - |
ⓒ 변영숙 |
이제 네비는 좁은 농로를 가리킨다. '이 길이 맞겠지. 그런데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인 멍우리 협곡이 이런 논밭 사이에 있다고? 강은 어디에도 없는데?' 다른 길도 없었고 네비도 길이 틀렸다는 신호는 보내오지 않는다. 설사 길을 잘못 들어섰다 하더라도 눈 앞에 펼쳐지는 풍광 앞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뒤쪽으로는 산이 보호막처럼 둘러 서 있고 앞쪽으로는 초록색 들판이 막힘없이 펼쳐져 있다. 이 풍경만으로도 험준한 고갯길을 넘어 온 데 대한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 계속 차 한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농로를 따라 들판을 가로 지른다. 마치 외통수 길을 달려가는 느낌이다. '차 돌릴 데는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 즈음 너른 주차장이 나온다.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 멍우리 협곡
▲ 멍우리협곡 초입에 펼쳐지는 드넓은 들판 산정호수에서 발원한 부소천과 한탄강이 멍우리 협곡에서 합류한다. |
ⓒ 변영숙 |
멍우리는 '멍+을리'가 합쳐진 지명으로, 멍은 '온몸이 황금빛 털로 덮힌 수달'을 뜻하며, 을리는 한자의 乙(을)자처럼 흐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인데 좀처럼 수긍이 되지 않는다. 협곡이 하도 험해 넘어지면 멍이 남는다고 해서 '멍우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주차장 바로 앞에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다리가 보인다. 부소천교다. 부소천은 산정호수에서 발원해 문암리를 지나 흐르다 이곳에서 한탄강과 합류한다.
▲ 멍우리협곡 화산폭발과 강의 침식작용으로 생성된 한탄강 지질공원, 멍우리협곡. |
ⓒ 변영숙 |
부소천교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세상에!' 라는 탄성밖에 나오지 않는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험준한 협곡이 내 눈 앞에 펼쳐지다니. 협곡의 높이가 30~40m는 될 것 같다. 현무암 바위를 초록색 식물이 통째로 집어 삼킨 듯 절벽이 온통 푸르다.
혹시 멍우리가 이토록 푸른 절벽을 두고 비유적으로 말한 것은 아닌지. 살짝 몸을 돌려 반대편을 바라보니 부소천이 한탄강 본류와 만나 멀리 멀리 흘러가는 것이 보인다. 작은 하천들이 흘러들어 큰 물줄기를 이루어 흐르는 모습은 장엄 그 자체다.
▲ 한탄강 지질공원 '멍우리협곡' - |
ⓒ 변영숙 |
아찔하다. 조금만 더 있다가는 현기증이 날 것 같다. 다리를 건너 반대편 협곡으로 넘어간다. '인근에 사격장이 있다'는 안내문과 함께 경작지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울창한 나무 숲에 가려 강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강물 흐르는 소리만 들려온다. 두려움이 엄습한다. 인간사에 얽힌 두려움이 아닌 자연 앞에 선 왜소한 인간의 두려움이다. 10만~50만년이라는 상상도 되지 않는 시간 앞에 선 자의 두려움이다.
▲ 멍우리협곡 둘레길 멍우리협곡 한탄강지질공원에는 4개의 트레킹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
ⓒ 변영숙 |
마음을 다잡고 다시 발걸음을 뗀다. 숲 속에는 사용하지 않는 방공호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무엇을 지키고자 푸르른 젊음은 땅구덩이 속에 한껏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어야만 했을까. 한 뙈기의 땅이라도 농경지로 일구고 있는 손길은 또 얼마나 부지런한가. 이 모든 풍경이 강줄기를 따라 무심히 펼쳐지고 있다.
숲 속의 적막감이 무서워 막 돌아 나가려는 데 산책을 다녀오는 마을 주민들과 맞딱뜨렸다. 이 반가움이란!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오셨어요?" 걱정 담긴 물음에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진다. "다리 있는 곳 까지만 가보세요. 아주 멋져요."
▲ 멍우리 협곡 벼룻교에서 본 한탄강과 멍우리협곡 |
ⓒ 변영숙 |
훨씬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산책길을 따라 걸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주민들이 말한 다리 '벼룻교'가 나온다. 벼룻교에 올라서니 양 옆에 주상절리를 거느린 협곡이 길게 이어진 모습이 훨씬 더 잘 조망된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강 건너 강변에 사람들이 보인다. '어떻게 저기까지 내려갔을까?' 나 역시 강변으로 내려가 주상절리를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 멍우리협곡과 드넓은 들판 구름이 걷히자 눈부신 태양이 멍우리협곡과 들판을 비추고 있다. |
ⓒ 변영숙 |
막 떠나 오려는데 하루종일 하늘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이 걷히면서 눈부신 태양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탄강 협곡과 들판에 빛이 쏟아져 내린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변화무쌍함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멍우리협곡 즐기기
멍우리 협곡 지질공원에는 1코스 구라이길, 2코스 가마소길, 3코스 벼룻길, 4코스 멍우리길 등 4개의 트레킹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전 구간 5~6km거리로 1시간 ~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인근에 있는 '멍우리 협곡 캠핑장', 화적연 캠핑장 등은 캠핑 애호가들 사이에서 '오지' 캠핑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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