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명이 23일 걸어 제주도 한 바퀴, 제주올레 ‘코로나시대 축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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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부터 11월 14일까지, 장장 23일간 이어진 제주올레 걷기축제가 막을 내렸다. 참가자들은 15명씩 그룹을 이뤄 23개 코스를 흩어져서 걸었다. 사진은 제주올레 1코스 알오름을 걷는 사람들. [사진 제주올레] 제주올레 걷기축제가 14일 막을 내렸다. 말 그대로 ‘대단원’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축제였다. 코로나19 여파로 전국의 문화관광축제 대부분이 취소되거나 인터넷 중계로 전환된 올해 900여 명이 23일에 걸쳐 제주도를 한 바퀴 다 돌았다. 14일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앞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제주올레 관계자와 참가자들은 얼싸안고 감격을 나눴다.
제주올레 걷기축제는 올해 11회째를 맞았다. 예년까지는 3000~4000명이 모여 길을 걷는 떠들썩한 잔치를 벌였다. 올해는 그러한 방식이 불가능했다. 축제를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봄부터 축제를 문의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제주올레 사무국은 결국 ‘따로 함께’ 걷는 방식을 고안했다. 참가자를 23개 팀으로 나눠 23개 코스에 흩어져 걷도록 했다. 한 팀 정원은 15명, 날마다 발열 체크를 하고 마스크 쓰기, 2m 거리두기도 철저히 지켰다. 각 팀에 자원봉사자 두 명을 배치해 참가자 안전도 챙겼다. 덕분에 900여 명(누적 5400명)이 무사히 축제를 즐겼다. 한두 코스만 걸은 참가자도 있었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돈 완주자도 있었다.
올해 걷기축제에서는 걷기만 한 게 아니었다. 코스에 따라, 요일에 따라 알찬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양조장에서 제주 전통 술을 빚고, 주민에게 직접 마을의 역사를 듣는 뜻깊은 시간도 가졌다. 주말마다 깜짝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주민 입장에서는 수천 명이 메뚜기 떼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행사보다 23일간 꾸준히 손님이 찾아오는 방식이 반가웠다. 서귀포 대정읍에서 제철 농산물을 파는 ‘무릉외갓집’의 윤승환 매니저는 “날마다 찾아오는 축제 참가자가 지역 농산물에 높은 관심을 보여 축제 기간 매상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폐막식에서는 완주자 시상식도 진행됐다. 올해 걷기축제 참가자 중 56명이 제주올레 23개 전 코스(부속섬 제외. 390㎞)를 다 걸었다. 서른네 번이나 제주올레를 완주한 열혈 올레꾼도 있었다. 올레길이 처음인데 완주한 참가자도 있었다. 전미숙(58)씨 이야기다.
전씨는 9월 걷기축제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중앙일보 기사를 보고 완주를 신청했다. 앞산을 걸으며 몸을 만든 뒤 축제에 참여했다. 폐막식장에는 엄마의 완주를 축하하기 위해 멀리서 두 아들 가족이 찾아와 감격을 나눴다. 전씨는 “무모한 도전이라며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제주올레의 철저한 준비와 함께 걷는 이들 덕분에 완주할 수 있었다”며 “가을 제주의 풍광도 좋았고 제주를 깊이 배우고 이해하는 시간이어서 더 뜻깊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친김에 추자도·우도·가파도 올레 코스까지 모두 걷고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란다.
올해 제주올레 걷기축제는 여러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런 식의 ‘분산형 축제’라면 방역을 지키면서도 축제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위축된 것 같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자연을 느끼고 싶어한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계기도 됐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소감이다.
“언젠가 먼 미래에 제주를 한 바퀴 도는 한 달짜리 축제를 열고 싶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시대에 그 꿈이 실현됐네요. 언제나 그렇듯이 길에서 답을 찾으며 내년 축제도 준비하겠습니다.”
제주=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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